오늘은 엄마 아빠가 제주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이다.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시기에 피곤할 엄마 아빠를 위해 공항으로 데리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택시를 타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이미 들은 것.
우리 집 자차가 아니라 '회사 차' 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혼자 운전했다 사고가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 일전에 갑작스럽게 사고가 한 번 있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운 엄마의 맘이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제주도 여행 하루 전, 고구마 줄기 겉껍질을 함께 다듬으며 엄마에게 무심하게 데리러 갈게 하고 던졌다.
"엄마, 내가 가는 길도 태워 드리고, 올 때도 데리러 갈게."
"갈 땐 다른 분이 태워준다 했고, 올 때는 택시 타면 돼."
"뭐 하러 그래, 새벽에 공항 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도 미안하지 않게 내가 운전하면 좋고, 그분도 새벽에 안 나와도 되고 다 좋잖아. 내가 태워줄게."
"다른 사람이 태워주기로 했다니까?"
"그럼 지금 전화해서 안 그러셔도 되겠다고 연락하면 되잖아?"
"그 차 타고 가면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이제 됐어 그만해."
"내가 운전하는 게 불안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라고 하면 곱게 받아들일 순 있나?"
아이고, 느낌대로 내가 문제였다~ㅎㅎㅎㅎㅎ
사고가 난지 1년이 훌쩍 넘었고, 그때의 일 이후로 나는 기차역에 아빠를 모시러 가는 길 외에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달려볼 기회도, 성장할 기회도 없었다. 모두 차단~~ㅎㅎㅎㅎㅎ
사고 당시, 같은 차 안에 타고 있던 나는 엄마의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른 틈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엄마의 차단과 속단들이 조금 속상하다. 이야기가 샜다. 다시 돌아오자.
두 번째는 엄마의 불안. 회사 차를 운전하다 사고 나면 안 된다. 회사 차를 내가 혼자 몰면 안 된다. 회사 차가 아니더라도 내가 혼자 운전하는 게 불안하다.
제주도에서 돌아오시는 오늘,
그래도 오늘 전화해서 다시 물어볼까? 아침부터 내내 고민이 됐다. 전화기를 들면서도 전화를 하면 들을 엄마의 말이 뻔했고, 뻔한 말을 들을 때마다 뻔뻔하게 튕겨내지 못하고 늘 서운함을 느낄 내가 불 보듯 뻔히 보였다. 누구 하나 좋은 맘일 사람이 없었다. 저녁까지 고민하다 결국 가지 않았다.
데리러 갈게.
라는 말.
참 쉬운 말인데, 참 어렵다~ㅎㅎㅎㅎ
우리 집 차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것은 엄마의 불안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위험할 미래로 불안해하기 보다 새로운 날이 시작될 수 있다는 쪽에 시도와 믿음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것, 딸이 혼자 운전하는 게 불안하지만 그래도 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믿음에 배팅해 보지 않는다는 것. 여전히 불안하지만 한 번쯤은 딸이 잘 운전해 올 것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엄마의 불안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 믿어지지 않아도 굳게 믿고 상황을 달리 보는 것이 엄마의 큰 장점임을 아는 나로서는 나를 그렇게 보아주고 틈을 내주지 않는 것에 서운하다. 그런 걸 보면 엄마와 나는 별반 다르지 않구나. 머리로는 상대방을 이해하지만 속상해한다는 것~ㅎㅎㅎㅎㅎ
데리러 갈게.
엄마 아빠 은퇴 후에 따로 살게 되면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상황일 것이다. 자차가 생겨 편한 마음으로 데리러 와달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을 상황이 오리란 것을 엄마는 알까 모르겠다.ㅎㅎㅎㅎㅎ
우리 집은 모두 똥고집이라
엄마가 앞으로 달라질 것을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데리러 갈 수 있는 상황마다 서운해질 대답을 들을 걸 알면서도 물어보는 나는 여전히 기대한다.
"데리러 갈게."
"응, 몇 시까지 조심히 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군요.
열 번 안되면 백 번은 찍어보지 뭐.
100번 찍어 안 넘어가면 그때 말련다.
아직 100번은 안 채웠으니 고고싱~~~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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