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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일기

아빠의 위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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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을 먹고

간단히 홈트를 한 세트 한 후에

베이킹을 시전했다.

늦은 밤에도 30도가 넘는 대구의 열대야는

가만히 있어도 힘이 나가기 마련인데

가만 보니 우리 집식구들이 더위에 조금 지친 듯 보였다.

앞으로 남은 더위를 잘 통과하기 위해

가족의 입맛 돋우기 프로젝트로 '레몬'을 이용한 과자를 만들기로 한 것.

레몬바를 굽기로 했다.(상큼한 레몬 필링, 바닥에는 바삭한 크러스트, 필링 위에는 소보로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소보로 굽고, 크러스트 굽고, 필링 만들고

설거지하고, 다른 쿠키 재료 계량하고 섞고

하던 중,

오븐에서 딱 알맞게 구워진 소보로와 크러스트를

1초 만에 쏟아 엎어버렸다.

장작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부지런히 만들었는데

때깔 좋게 잘 나온 과자를 오븐에서 빼낸 지 1초 만에 엎어버리자 속상한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아, 망했다. 다시 처음부터다."

올라오는 속상함과 화를 참았지만

억눌렀던 화는 손끝으로 새어나가

'저는 화가 났습니다.'라는 티가 났다.

설거지도 '푸다다다다다다닥'

냉장고 문을 닫을 때도 '쿠왕!'

영문도 모르고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온 아빠.

엄마가 방에서 슬며시 "과자 망했어. 지금 기분 별로야." 귀뜸해줬다.

예전 아빠 성격이라면

"그래도 지보다 나이 많은 부모 앞에서 저렇게 지 속상한 티를 내? 네가 이 집에 왕이야?"

이렇게 나왔어야 하는데

엄마한테 상황을 전해 들은 아빠가 날 부르고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빠가 사줄게. 뭐 먹고 싶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마음속 화가

갑자기 스르륵 내려갔다.

예상치 못했던 아빠의 말은 그렇게 아빠 방식으로 딸에게 위로를 건넸다.

"속상하지?"

예전 아빠였다면 딸이 속상하든 말든 거실에서 리모컨을 잡고 티비를 켰을 텐데. 생각지 못한 아빠의 모습에 허가 질렸다.

그리고 동시에 "아빠가 많이 변했네."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변한 아빠의 모습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엄마 아빠.

딸은 이리 아직도 부족하네요.

내 선에서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화난 상황 속에 계속 나를 던져놓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거 사줄게."

라는 아빠 말대로

화가 날 때는 엄마가 사 온 월드콘을 먹어

화난 뇌에 달달함이란 약을 처방해 주거나

화난 상황에 계속 있는 나를 다른 환경으로 옮겨놔야겠어요.

속상했지?

공감하는 일이 매우 서툴지만

속상했지?

라고 말하고 있는

아빠의 위로법.

고마우이.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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