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설 명절이 되면 엄마는 바빠진다.
명절 때마다 웃어른들께 명절 선물을 돌리시기 때문이다.
지난주 설 명절 전, 올 해도 어김없이 엄마는 어른들께 드릴 명절 선물을 구매하고 돌릴 계획이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일정을 함께 했다.
선물을 구매해서 포장하고, 집까지 직접 찾아가서 선물을 전해야 했기 때문에 차가 있으면 무척 편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회사차이자 아빠차를 아빠 없이 내가 운전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셨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보다 사고가 안 날 확률이 더 컸음에도. 엄마의 두려움은 확신이었다.
명절 선물을 구입하러 가는 길도 어김없이 버스를 탔다. 차로 가면 20~30분이면 넉넉할 시간이 버스를 타면 1시간이 걸린다. 선물을 사서 다시 집으로 오는 버스 안, 나는 헛된 희망에도 소망을 품고 또다시 엄마에게 말했다. 4번째 질문이다.
"엄마, 선물 돌리러 가는 길은 차 타고 가면 어때? 내가 운전해 줄게."
"아니야. 그냥 버스 타고 갔다 올 거야."
"작년에도 버스 타서 2시간쯤 걸렸잖아. 차 타면 금방인데."
"아니야. 버스 타면 돼."
"내가 태워줄게."
"아 버스탈거래도?"
오늘도 아니구나.
그리곤 나는 입을 닫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밥을 먹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선물을 돌리러 바로 나갈 생각이셨지만, 아침도 안 먹고 같이 장을 본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같이 점심을 드셨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보다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에 엄마 맘은 조급하셨으리라.
엄마가 바로 준비해 나가실 수 있도록 설거지와 뒷정리를 맡았다.
"오후에 도서관 가나?"
"응 그러려고요. 엄마는 이제 나가시지? 추운데 단디 입으셔."
"응."
뽀득뽀득 설거지를 마저 하고 있는데
등 뒤로 엄마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 들린다.
"그럼 차 타고 갔다 올까..."
"?"
"차 타고 빨리 다녀올까..."
(?!)
"그래! 엄마 차 타고 갈 거면, 바로 도서관 안가."
그렇게 설거지를 부지런히 끝냈다.
차에 탄 엄마의 모습은 긴장 그 자체.
시동 걸고 옆에 본 엄마의 모습은 걱정이 한 움큼이다. 주차할 때가 마땅치 않다. 운전 잘하는 너희 아빠도 달가워하지 않는 거리다. 주차할 곳이 없으면 어떡하지. 거기는 도로도 좁은데. 큰 길가에 정차해 놓기 괜찮을까. 등등.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잘 다녀왔다.
"엄마, 우리 집에서 나간 지 1시간도 채 안 걸렸네요. 40분 걸렸어."
"그렇네. 1시간도 안 걸렸어."
2시간 넘게 걸렸을 일이 40분 만에 끝났다.
1시간 지체되어 출발했지만, 계획보다 빨리 일이 끝났다. 그렇게 엄마는 오늘의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집으로 오셨다.
모든 것은 불안하지만 엄마가 낸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전히 불안한 중에서 용기 내 보는 쪽을 선택한 엄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용기에 보답하여 '긍정적인 좋은 경험'을 안겨 드릴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쁘고 감사하다.
오늘이 엄마에게 좋은 기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은 이전에 엄마에게 심긴 부정적인 경험이 계속 자리잡지 않고, 긍정적이고 좋은 경험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오늘의 긍정적인 경험의 출발이 되어, 앞으로 엄마가 용기 낼 일이 많아지셨으면 좋겠다. 그 용기가 엄마의 마음과 생각에 크고 작은 긍정적 경험들을 많이 채우는 선순환을 만드리라 믿는다.
믿지 못했을 텐데
오늘 처음으로 용기 내주어 고마워요!
'자식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년만의 중화반점! (0) | 2023.02.08 |
---|---|
엄마 생신, 아빠 생신 (0) | 2023.01.21 |
발효버터가 채운 오늘 아침 (0) | 2023.01.18 |
아빠는 금식 중 (0) | 2023.01.15 |